1995년 15세인 내가 영화인의 길에 처음 들어섰을 때 독립영화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가판대의 신문 1면에서 영화 <꽃잎>의 오디션 문구를 발견하고부터 레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을 시작으로 유럽 독립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나면 충무로에 가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 티켓을 끊고 당시 뤼크 베송의 <레옹>(1994)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화들은 미성년자 관람 불가였기에 어떡하면 어른처럼 보여 영화관에 들어갈지 고민하며 사이즈가 안 맞아 어울리지 않는 친언니의 옷과 립스틱을 꺼내 바른 후 고소한 팝콘 냄새에 설레는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들어가 앉아 영화를 감상했던 게 떠오른다.
이미 관람하여 한쪽이 떨어져 나간 영화 티켓 한 장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다이어리에 모아놓고 학교 쉬는 시간마다 꺼내보며 다음은 무슨 영화를 보러 충무로에 갈지 그 기대에 잠들지 못한 날들도 많았다.
성인이 된 후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빠져들었다. 감독님들의 영화 중 <더 차일드>를 가장 좋아한다. 꾸밈없는 날것의 거친 핸드헬드 화면 그리고 갓난아기라는 작은 등장인물의 설정으로 무장한 후 회색빛의 앰비언스와 함께 나의 가슴을 마구 폭격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다짐했건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이번에도 마지막 장면에 눈물을 마구 흘리고 있으니 정말 인정 없는 작품이다. <더 차일드>는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꾸밈없고 초라해 보이는 미장센 안에서 현실 그대로가 주는 사실적 폭로가 보는 이의 감정이 휘몰아치게 만드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끊임없이 사회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보는 이에게 죄책감 혹은 끝없는 먹먹함을 안겨준 영화다.
2002년 봄 가수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던 나는 ‘반만 나를 믿어봐'라고 외치며 공연장을 휩쓸고 다녔고, 더 정확히 대한민국이 붉은 악마로 물들기 전, 우리나라에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또 하나의 명작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박찬욱 감독님의 대표작으로 모두 <올드보이>(2003)나 최근의 <헤어질 결심>(2022)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은 <복수는 나의 것>이라 말하고 싶다. 당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는 스토리나 미학적으로나 감히 최고의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의 컬러감이나 명확히 계산된 듯한 앵글과 사운드의 활용은 당시 배우로서의 나에게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 준 매력적인 작품이다.
2005년 한창 1세대 한류를 책임지는 가수 중 한 명으로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냈고, 해외를 오가며 많은 고전 영화들과 신작 영화들을 보았다. 당시 휴대용 PDP에 좋아하는 영화도 넣고 다녔고, <오즈의 마법사>(1939)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들과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영화들, 우디 앨런의 영화들도 사랑했다.
가끔 한국에 올 때면 영화를 보러 극장에도 자주 나섰다. 20대 중반에 들어선 어느 날 극장가에서 따뜻하고 행복한 가족 이야기 같은 일본 영화의 포스터를 마주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감상해 본 일본 영화라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외에 처음 접하는 일본 영화였다. 1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확인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첫 신에 들어섰다. 하지만 나는 첫 장면부터 영화에 매료되어 시작부터 끝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폭풍의 눈물을 흘렸다. 이 영화가 끝나고 눈물을 훔치며 편의점에서 유키가 좋아했던 딸기 초콜릿 과자를 사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른인 나에게 책임을 물었고, 나의 문제만 같았고, 끊임없는 죄책감을 안겨준 영화이다. 정말 대단한 연출의 힘이며 나의 인생 영화이다. (올해의 프로그래머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