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는 정책, 산업, 예술로서 영화가 위기에 처했다는 작금의 시기야말로 영화제의 초기 정신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이에, 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를 통해 전 세계에서 독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의 긍정적 대안 사례를 소개한다. 영화제 초기부터 제작・투자를 하는 독특한 모델을 제시한 전주국제영화제가 이번 특별전을 통해 저예산 영화의 창의적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한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했고, 그 혼란과 후유증 역시 얼마나 더 지속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에 놓였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프론트라인 섹션의 ‘다시, 민주주의로’라는 소섹션을 통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을 다룬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한다. 대법원 점거나 부정선거 의혹 등 우리와 놀랍도록 비슷한 모습의 브라질을 비롯하여,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책임을 묻는 미국의 한 공화당원이 겪어야 했던 따돌림,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단의 젊은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들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동안 계속해서 한국영화사와 접점을 찾아왔던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도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영화 산업의 대중스타로 군림하면서도 다채로운 영화적 실험을 시도했던 배창호 감독에 주목하는 행사이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와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 <배창호의 클로즈 업>을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는 동시에 실험성과 대중성이 강렬하게 엿보이는 작품 3편을 함께 상영한다.
아울러 지난해 말 타계한 고 송길한 작가를 기리기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출범 당시부터 긴밀한 관계를 가져온 송길한 작가에게 특별공로상을 수여할 계획이며, 지난 18회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미완성작 <비구니>를 특별 상영할 예정이다.
다양한 영화인을 프로그래머로 선정해 자신만의 영화적 시각과 취향에 맞는 영화를 선택해 관객에게 선보이는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의 다섯 번째 주인공은 배우 이정현이다. 15세의 나이로 <꽃잎>의 주연을 맡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이후 가수로 변신했다가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이정현 프로그래머의 영화에 대한 다채로운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저예산 장편영화 제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올해의 경우 한 편만 상영한다. <카운터스>(2017), <모어>(2021) 등으로 알려진 이일하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호루몽>이 그것. 재일 한인 3세 여성운동가이자 사업가인 신숙옥 씨의 지난한 삶을 통해 재일 한인들의 현실을 돌아보는 이 영화는 일본 정부의 무책임과 극우 정치의 발호 속에서 꿋꿋하게 싸워온 모습을 조명한다. <호루몽>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더욱 뜻깊은 영화가 될 것이다.
2023년부터 시작한 가치봄(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사업 및 특별상영 프로그램은 규모가 더 커진다. 올해부터 전주국제영화제는 가치봄영화제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많은 가치봄영화를 상영하고 관객층 또한 확대함을 통해 포용적 영화문화를 조성하고 가치봄영화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전주국제영화제 가치봄(배리어프리) 영화의 날’을 운영하여 이 기간 동안 화면 해설, 수어 통역 등 다양한 가치봄영화를 집중적으로 상영할 계획이다. 보다 넓은 홍보를 위해 가치봄 앰배서더를 운영할 예정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 개막일을 수요일로 변경하였고 관객 분산과 초반 행사의 연속성을 유지함에 주효했었다는 내외부 평가가 있었다. 올해는 개막 다음날인 목요일부터 다음주 화요일까지 6일간의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진다. 이에 관객층을 세분화하고 부대행사 등을 중후반부까지 배치하여 황금연휴 효과를 최대화하고자 한다. 이미 전체 기간 좌석점유율이 80%에 가깝기에 비약적인 관객 증대가 이루어지긴 어렵겠지만 중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전략적인 일정 편성은 90%를 넘는 초반부 관객을 분산하여 관람과 행사 참여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의 확장된 거점을 중심으로 전주 곳곳의 새로운 문화공간을 찾아 다양한 베뉴를 조성한다. 전주만의 독특한 상영장을 조성했던 ‘골목상영’은 지난해 너무 많은 관객이 찾아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지만 지역 내 숨은 작은 공간을 소개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유지하며 좀 더 많은 장소에서 진행한다. 영화제 기간을 포함, 영화제 이후 9월까지 이어질 대규모 야외상영 역시 전주만의 도시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전주시의 관광거점도시 사업과 연계한 부대행사들은 올해까지 이어진다. 일반 상영과 메인 프로그램에서의 영화제 정체성을 유지하되 영화제의 대중친화적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다. 가정의 달, 연휴 기간에 영화제를 방문하는 시민들과 일반 관광객들이 흥미롭게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015년부터 매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중 100편의 영화를 100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본인만의 포스터로 만들어 전시하는 100 Films 100 Posters는 지난 10년 동안 영화제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전시로 관객은 물론 영화계, 디자인계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공간과 운영 기간을 확장하여 진행했고 올해도 새로운 시도들을 접목한다. 디자인 포스터와 상업용 포스터를 비교하는 부대전시를 준비했으며, ‘영화와 포스터’를 넘어 ‘영화제와 디자인’에 대한 주제로 학술대회 성격의 비평의 자리를 연다. 전시 외에도 디자인 포럼, 워크숍 등 영화와 디자인에 대한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기획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계 현안뿐 아니라 국내외 정치, 사회적 민감한 이슈들도 영화제 기간에 현장에서 논의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제공하여 나름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어왔다. 지난해 전주포럼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예산축소로 최근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영화네트워크 등의 단체가 올해도 참여하여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산업의 전반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 영화제 개최 기간은 여전히 진행형인 ‘한국 영화의 위기’에 대한 화두 외에도 ‘한국 사회의 위기’를 이야기해보아야 할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