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불면의 밤을 달굴 영화들도 예년의 경우처럼 다채롭다.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는 여성의 내밀한 이야기가 결합된 공포영화부터 정치와 호러가 결합된 영화, 틴에이저 영화가 변형된 정통 호러물, 그리고 한국 좀비영화까지, 취향에 맞춰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리, 공포 드라마인 <아니말>은 투우 경기로 이름 난 지역인 프랑스 카마르그를 배경으로 인간과 미지의 야수 사이의 긴장을 다룬다. 중심인물은 20대 초반 여성 네즈마로,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남성 친화적인 길을 선택한다. 투우 시즌이 한창인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사체가 잇달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야수 같은 황소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지자 마을은 흉흉해진다. 네즈마가 남성 중심주의가 팽배한 이곳에서 생존하려는 모습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영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호러영화 <프레와카>는 광장공포증을 앓는 페이그라는 여성 노인을 돌보기 위해 외딴 마을로 파견된 재가 간병인 슈의 이야기다. 아일랜드 전설 속 사악한 존재 ‘나 시'(Na Sidhe)를 두려워하는 페이그의 첫인상은 괴팍하지만 서서히 슈는 그녀의 어두운 비밀 안으로 스며들면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영화는 슈가 과거에서 출발한 페이그의 공포와 맞서게 되면서 일종의 여성 연대극이 된다.
초자연적 공포를 다루는 스페인 영화 <통곡>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동떨어져있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다. 현재 시점 마드리드에 사는 안드레아는 혼자만 누군가의 통곡 소리를 듣게 된다. 그녀는 이와 관련해 끔찍한 일을 겪게 되고, 이야기는 갑자기 20년 전 아르헨티나 라플라타로 넘어가 카밀라와 마리의 이야기로 이어져 두 여성 또한 안드레아가 들었던 통곡을 듣게 된다. <통곡>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그에 따른 고통, 광기, 고독 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 공포가 먼 시간과 공간을 건너 일종의 저주로 존재할 수밖에 없음 또한 보여준다.
아르헨티나 영화 <1978>은 정치적 광기와 이를 능가하는 초자연적 공포를 보여준다. 배경은 군사독재 정권이 폭력성을 대내외적으로 세탁하기 위해 월드컵을 개최한 1978년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결승전이 진행되는 시간, 군부의 고문 전문부대는 젊은이들을 비밀수용소로 납치해 고문을 자행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납치가 잘못 이뤄졌다는 것. 납치된 이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신봉하는 종파의 일원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수용소는 악몽으로 바뀐다. 독재를 옹호하는 이들이 보면 자지러질지도 모를 영화다.
<이식된 욕망>은 올해 불면의 밤 상영작 중 가장 정통 호러 장르에 가까운 영화다. 중국에 사는 천재 소녀 웨이는 아버지와 힘께 피부이식법을 연구 중이다. 이 연구는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성공한다면 부녀에게 명예와 부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극적으로 성공하는 듯했던 실험이 아버지의 목숨까지 앗아간 뒤, 웨이는 아버지의 연구를 잇기 위해 친척이 사는 뉴질랜드의 한 대학으로 유학 간다. 하지만 웨이는 이 낯선 곳에서 자신을 따돌리는 동료들과 연구를 탐내는 교수와 맞서야 한다.
올해 불면의 밤 부문 유일한 한국영화 <차가운 것이 좋아!>는 22회 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출품됐던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의 홍성은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며 국가인권위원회의 16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다. 이런 설명에서 연상할 수 있듯, <차가운 것이 좋아!>는 좀비영화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전형적인 장르물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좀비 바이러스 창궐로 국가적 위기를 겪었던 대한민국 정부가 좀비를 제거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설정으로, 이 와중 좀비 소탕팀 대원인 나희가 좀비 은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장르물의 외피 속에 철학적 고민거리를 품은 영화다.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