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서 혁신성과 실험성을 대표하는 섹션은 영화보다 낯선이다. 최근 많은 영화들이 실험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영화를 소개하는 경향이라 간혹 '무엇이 실험영화인가'라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사전의 의미처럼 새로운 형식, 방법을 시도하는 일이라면 그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낯선' 섹션에서는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이 이름을 짓고, 영화를 선정하며 지켜온 정신인 ‘영화 언어'의 확장성에 무게를 두고자 한다. 여기, 조금은 낯설지만 이미지와 사운드만으로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려는 대담하고 위험을 감수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평화롭지만 끈질긴 응시의 힘을 가진 제시카 사라 린런드의 카메라가 아르헨티나의 동물원으로 향했다. <콜렉티브 모놀로그>는 박물관이 되거나, 생추어리가 되는 변화 속의 동물원을 관찰하며 인간과 동물, 자연에 관한 역사적 기록과 관계의 영향을 드러낸다.
포르투갈 감독 마르타 마테우스의 데뷔작 <바람의 불>은 추수기 포도밭의 농민들을 따라간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황소의 습격을 피해 나무 위로 피신한 이들은 각자의 꿈과 기억 속을 여행한다. 감독은 우화적 구성으로 시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푸르스름한>은 데뷔작 <베아트릭스 Beatrix>(2021)로 단숨에 오스트리아의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밀레나 체르노프스키, 릴리트 크락스너의 신작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는 전작과 이어지지만 이번에는 거리감과 고독감이 느껴지는 도시의 인물들을 보여준다.
<증거>는 감독의 어린 시절 가족의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돈이 한 나라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카를로스 바스케스 멘데스 감독은 <같은 색의 아홉 가지 다른 뉘앙스>에서 마치 고전 속의 예술가들처럼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영화의 재료를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의 형식과 기술로 표현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만들어냈다.
<거주민>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소개된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 The Tsugua Diaries>(2021)의 공동감독 모린 파젠데이루의 신작이다. 감독은 포르투갈에 정착해 있고,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사는 감독의 어머니는 마을에 외국인들이 이주하며 누군가는 이들의 생존을 돕고, 누군가는 추방을 바란다는 소식을 전한다. 편지라는 사적인 형식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적 이슈와 감정을 시각화한 수작이다.
이 영화는 시네마를 수첩으로 사용한다. 혹은 영화는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과 숨겨진 것 사이를 거니는 산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크 브라운과 함께하는 7가지 산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산책이라는 행위가 영화 기록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에세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계 우주 정복자 환영>에는 실화와 거짓이 존재한다. 안드레스 후라도 감독은 온갖 종류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UFO처럼 기묘한 유물을 만들어 냈다. 약간의 진실, 약간의 판타지, 그리고 대량의 시네마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한 국가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영화가 그런 성취를 이끌어 낼 힘이 있을까? 아날리사 도나텔라 콰글리아타의 데뷔작 <멕시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야!>에 그 답이 존재한다. 한 편의 영화(a film)가 시청각의 힘을 시네마(cinema)로 되돌려주는 영화다.
올해 단편영화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호흡만을 전면에 내서워 실험성을 밀어붙인 영화들이 돋보인다. 특히 한국에서 필름을 재료로 수작업의 아름다움을 실천해온 이장욱 감독의 단편을 모아 선보이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신작 <창경>을 비롯한 16mm 필름 상영과 이민휘 음악가의 노래에 맞춰 이장욱 감독이 직접 2채널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도 진행한다. (문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