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리안시네마 상영작은 장편영화 20편, 단편영화 18편으로 역대 가장 많다. 비경쟁 부문에 지원한 영화들과 한국경쟁 부문에서 탈락한 영화들이 경합하는 탓에 코리안시네마 부문은 진입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독 올해 선정과정이 힘들었던 것은 비경쟁 부문 출품작만 114편이었고 한국경쟁 탈락작이 100여편으로 양이 많았고, 질적 수준 또한 역대 어떤 영화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반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올해 코리안시네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다큐멘터리다. 7편의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분야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다. 우선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코리안시네마에서 한일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2편이다. 임흥순 감독의 <기억 샤워 바다>는 동명 전시의 다큐멘터리 버전으로, 항일운동가 자손이자 4·3 사건 당시 연락책이었던 김동일과 그의 옷을 소재로 한다. 김동일은 1950년대 후반 일본으로 넘어갔는데 그는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옷을 모았다. 다큐는 김동일의 이야기 속에서 관동대지진 속 재일한국인 학살 등 역사를 가로지르고 일본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뛰어넘는다. <이방인의 텃밭>은 도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8년째 살고있는 재일동포 김이향 감독과 일본에 살고 있는 가족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한국과 일본 그 어디서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동포의 정체성에 관해 내밀하게 이야기한다.
한국경쟁과 한국단편경쟁 등에서 두드러졌던 LGBTQ 소재 다큐멘터리도 선보인다. 2004년 창립 이후 20년 동안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단체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해온 김일란 감독의 신작 <에디 앨리스>는 남성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에디와 앨리스라는 두 인물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육체 기관을 바꿈으로써 여성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에디와 무용을 익히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려는 앨리스의 이야기가 보여진다. 참고로 뒤에 설명할 김조광수 감독의 <꿈을 꾸었다 말해요>와 김대환 감독의 <비밀일 수밖에> 또한 LGBTQ 소재를 담고 있다.
올해 코리안시네마 부문에는 예년보다 더욱 다채로운 소재의 다큐멘터리들이 눈에 띈다. 김화용 감독의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는 인간이 가금류를 다뤄온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현재 인류가 동물과 소수자를 인식하는 태도에 질문을 던지는 독창적인 프로젝트다. 이 작품 역시 동명의 전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윤한석 감독의 <핑크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이자 페미니즘 미술을 개척한 윤석남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대가족의 맏며느리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미술가로 변신한 작가가 거쳐온 힘든 나날을 조명하고 윤석남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다. 서한솔 감독의 <하트 투 하트>는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발달장애라는 까다로운 질병을 앓으면서도 연주자로서의 삶에 도전하는 단원들과 그들을 어엿한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돕는 가족의 이야기가 적절한 거리감 속에서 보여진다.
올해 한국 출품작 중에는 배우의 연출작이 눈에 띌 정도로 다수 출품됐다. 이 중 코리안시네마에서 선보이는 것은 세 편이다. 우선 <직사각형, 삼각형>은 주류 영화, 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출연해온 이희준 배우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겉보기에 가깝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한 가족의 모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서로 너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치고받고 물고 뜯는 모습을 통해 가족의 본질을 드러낸다. 19회 한국단편경쟁 부문에서 선보였던 이희준 감독의 단편영화 <병훈의 하루>도 함께 상영된다. <인서트>(2024), <다섯 번째 흉추>(2022) 같은 독립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려온 문혜인 배우의 첫 장편 연출작 <삼희: The Adventure of 3 Joys>는 영화 촬영 도중 사고를 당한 뒤 번아웃을 맞은 배우 혜림의 이야기다. 번잡한 서울을 떠나 경기도 양주 신도시로 향한 혜림은 조용한 나날을 익히다 삼희아파트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삶의 박동을 느낀다. 문혜인 배우는 지난 23회 영화제에서 <트랜짓>(2022)으로 한국단편경쟁 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이정현 배우의 첫 연출작인 단편영화 <꽃놀이 간다>도 전주에서 첫 선을 보인다. 선천적 질병을 앓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병원비를 꾸려야 하는 여성 수미의 이야기로, 수미는 어머니를 곧 시작될 꽃놀이 관광에 보내겠다는 희망으로 모든 것을 다 감당할 각오로 임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중견감독의 신작들도 눈길을 끈다. <말아톤>(2005), <대립군>(2017) 등의 정윤철 감독은 세월호 참사 당시 잠수사로 활동한 고 김관홍씨의 삶을 다룬 <바다호랑이>를 공개한다. 김탁환 작가의 『거짓말이다』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민간 잠수사들이 겪었던 고통을 드러내며 국가가 이들을 어떻게 내팽개쳤는지를 보여준다.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2003)처럼 상당 분량을 세트장에서 촬영한 점도 흥미롭다. 제작자이자 감독으로 맹활약중인 김조광수 감독의 신작 <꿈을 꾸었다 말해요>도 전주를 찾는다. 중고 카메라 거래를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된 두 남성이 다양한 계기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모습을 그리는 멜로 감성 다분한 드라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꾸준히 찾아온 ‘단골' 감독들도 있다. 우선 고봉수 감독은 튀르키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귤레귤레>로 2년 만에 전주를 되찾는다. 회사 출장차 튀르키예를 찾은 대식이 가이드투어 도중 남편과 함께 여행 온 옛사랑 정화를 만난다는 이야기로, 감독 특유의 유머와 함께 달콤쌉쌀한 감성이 두드러진다. 최창환 감독은 인천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항공기가 갑작스레 기타큐슈에 불시착하면서 레이오버 호텔에서 하루를 지내게 된 여섯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23회 영화제에서 상영된 <여섯 개의 밤>(2022)과 비슷한 구성의 이 영화는 인물들의 디테일한 드라마가 두드러진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 <초행>(2017)으로 제70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현재의 감독' 부문 감독상을 받았고 장우진 감독과 함께 봄내필름을 운영하면서 전주를 숱하게 찾았던 김대환 감독은 <비밀일 수밖에>를 통해 8년 만에 돌아온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여성인 지선과 사랑하며 동거하고 있는 정하에게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진우가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진우와 그의 연인 제니, 제니의 부모님까지 춘천에 모이면서 각자 간직하던 비밀이 드러난다. 한편, 21회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2020)로, 24회 <당신으로부터>(2023)로 두 차례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한 신동민 감독은 단편영화 <Dogs in the Sun>을 만들었다. 폭염 속에 방치된 개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 고민 중인 감독의 생각이 엿보인다.
언제나처럼 코리안시네마 부문은 과감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영화도 소개한다. 우선 17회와 19회 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백종관 감독의 신작 <시련과 입문>에서는 컴퓨터의 오류로 제대로 읽을 수 없게 출력된 프린트를 바탕으로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배우의 이야기가 스크린 안과 바깥에서 펼쳐진다. 지난해 <땅거미>(2024)로 한국단편경쟁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던 박세영 감독의 <저 구석 자리로 주세요>는 한국 최고의 색소포니스트 중 하나인 김오키의 새 음반 「힙합수련회」의 뮤직비디오인 셈이다. 중국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배경으로 이 음반의 전곡이 선보인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지원작 <철의 꿈>(2013)으로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NETPAC상을 받았던 박경근 감독의 영화 <백현진쑈 문명의 끝>은 2023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백현진 쑈 : 공개방송'을 영상으로 담은 것에 얼마간의 새로운 촬영분을 더한 작품이다. 전방위 예술가 백현진의 모습과 함께 실제인지 거짓인지 모를 그의 이야기가 선보인다. 2024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신진급 감독의 작품에도 관심을 쏟을 만하다. 차정윤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만남의 집>은 교도관 여성이 교도소 수용자의 여중생 딸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드라마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올해 한국영화의 주요 경향인 여성 연대극을 내포한 유사가족 이야기로 시종 쓸쓸한 톤이 일관된다. 한지수 감독의 <맨홀>은 폭력에 관한 깊은 고찰을 담았다. 일상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가 소방 현장에서 순직한 뒤 선오는 해방된 듯하지만 엄마와 누나가 아버지의 악행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자 혼란에 빠진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그는 이주노동자들과 부딪히면서 스스로 폭력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로 들어간다. 다큐멘터리 <안녕, 할부지>(2024)를 만든 심형준 감독의 <클리어>는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김푸름이 주연을 맡은 다큐/픽션으로, 1부는 김푸름이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레인보우워리어호에서 다양한 활동가를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2부는 플라스틱을 먹는 외계인이 지구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