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스터즈 섹션은 잘 알려진 이름뿐 아니라 숨은 거장의 신작을 소개한다. ‘숨은 거장'이라는 표현이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이는 작금의 시대에 전주국제영화제가 영화제 역할에 대한 답을 하는 행위이자 영화제의 방향성 제시이기도 하다. 최근 대형 영화제와 시상식 수상작이 다양한 기획전과 플랫폼을 통해 국내에 공개되고, 유명 감독과 복원영화가 새로운 세대에게 유행하고 있다. 이는 안정적이고 수준 높은 영화 문화 향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영화제는 무엇을 소개하는 공간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전주국제영화제는 다이야몬드를 캐는 광부의 마음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관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더 알려져야 할, 장인들의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국 리얼리즘의 거장 마이크 리의 신작 <내 말 좀 들어줘>는 평화를 느끼기 힘든 시대에 현자가 건네는 따끔한 일침이다.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삶을 정지시켜 버리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비유는 관객에게 깨달음과 마음의 포옹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프랑수아 오종은 삶이 욕망과 우연의 미스터리임을 아는 작가다. <가을이 오면>은 가족의 평안이 행복의 전부인 노년기의 두 여성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존재하는 욕망은 도덕적 갈등을 부추기며 평온했던 일상은 심리 스릴러 무대로 바뀐다.
안드레이 우지커가 신작 제목에 비틀즈의 노래 가사를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했던 말>에는 비틀즈의 공개되지 않은 영상과 당시 비틀매니아들의 모습이 우지커 전매특허인 아카이브 재구성을 통해 여름의 설렘을 전달한다.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의 대가이자 빛의 마술사, 퀘이 형제가 오랜 시간 단편 위주의 작업 뒤 세 번째 장편영화를 발표했다.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동명 소설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를 물성화하고 미스터리 장편영화로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아다치 마사오는 사회에 존재하지만 시스템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주목해왔다. <도주>는 평생 도망을 다닌 테러리스트가 죽음 앞에서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모순을 그린다. 간결한 스타일을 구사하지만 감독의 자전적 상황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기에 더욱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드니 코테가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로 돌아왔다. <폴>은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방을 벗어나 타인과 관계맺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관찰한다. 감독은 폴을 통해 건강하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작 감독이라는 수식어답게 신작 단편 <니키의 마지막 나날>도 함께 선보인다.
비밀 같은 제목 <소년>은 제임스 베닝의 <아메리칸 드림>(1984)과 대화를 이어가는 듯한 작품으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다. 미니어처 수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배경에는 다양한 시대의 노래와 정치적 연설이 흘러나오고, 감독의 말에 따르면, 과거를 보면 미래에 대한 경고를 읽을 수 있다.
<뜬소문>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가 7인이 모여 개최하는 정상회담 G7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하려던 이들의 모임은 세계의 종말을 마주하게 되고 이에 국가를 대표하는 위엄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는 총체적 풍자극이다. 케이트 블란쳇, 알리시아 비칸데르, 로이 뒤퓌, 찰스 댄스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크리스토퍼 페팃 감독의 대표작을 꼽자면 빔 벤더스가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스팅이 출연하는 등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던 70년대 후반 수작 <라디오 온>(1979), 이언 싱클레어(Iain Sinclair)의 동명책을 영화화한 <런던 순환도로>(2002) 등이 있다. 프로듀서로 함께 작업을 해 온 에마 매슈스가 이번에는 공동 연출로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낸다. <너와의 거리>는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부모의 안타깝고 절실한 마음과 그들의 시간을 시각화해 완성도 높은 영화로 승화시켰다.
존 스미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실험영화 감독으로 실제 이미지를 이용해 허구를 창조하는 영화적 구성에 뛰어난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존 스미스 되기>는 자전적 영화로 자신의 이름에서부터 출발해 그의 삶과 작업을 훑어나간다. 영화제는 이 소중한 기회를 빌어 그의 전작 두 편 <껌을 씹는 소녀>, <블랙 타워>를 함께 상영한다. 이 영화들은 실험영화로도 유머러스한 극과, 미스터리한 공포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고다르 사후에 나온 영화 2편을 소개한다.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공동 작업자들 덕분에 장뤼크 고다르의 새로운 영화를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시나리오>와 <영화 <시나리오> 발표>는 고다르의 영화 작업 방식을 보여주고, 감독이 말했듯이, 영화의 역사가 작은 영화에서 만들어졌음을 확인시켜 준다. (문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