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배급사의 도움 없이 직접 극장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개봉한 어느 독립영화는 며칠 전 최종관객수 1,184명으로 상영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라고 위안하기엔 영화가 갖춘 매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입니다. 최근 각기 다른 경로로 개봉한 다른 독립영화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가 즐겁게 본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들의 관객수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431명, 1,385명, 844명, 698명….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출품된 영화는 역대 최다편수인 1,510편입니다. 단순하게 계산하겠습니다. 한국 독립/단편영화란 영화를 보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이 많은 생태계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정정하겠습니다. 그런 생태계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 문단에서 쓰인 예시는 거의 허구이며 현실의 사례를 연상시킨다면 전적인 우연입니다.)
이는 고작해야 숫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 앞에 주어진 선명한 숫자입니다. 많은 사람이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창작의 민주주의가 실현됐다는 말도, 반대로 영화제작은 재능 있는 소수만 해야 한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이 숫자는 다만 영화(제작)의 아주 근본적인 역할에 대한 고민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만듭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는 어떤 충동에서 나오는 걸까요? 그 충동은 왜 카메라와 마이크라는 매개로 해소되어야 하는 걸까요? 무엇보다 만들어진 영화는 무엇을 공유하고 전달해야 하는 걸까요? 7명의 심사위원은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 몹시 당연하게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단편영화'를 만드는 실천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재고하게 되었습니다. 출품된 영화들의 경향을 어설프게 진단하기보다는 모종의 강박과 두려움이 발견되는 두 가지 상반된 관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카메라를 든 ‘나'와 세계의 관계입니다. 많은 극영화 속 인물들이 사회적인 관계를 단절하고 지극히 사적인 영역(가족, 연인, 상실된 기억)의 문제에 몰두하거나 사회와의 접속을 신경질적으로 끊어버리거나 아예 폭파하는 선택을 취하곤 했습니다. 영화를 통해 낯선 타인과 만나는 일은 어느덧 어렵고 생경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적잖은 영화들이 사회적 공간을 조형하는 대신 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천착하고, 직접 대면하는 대신 우리 주변에 산재한 영상과 녹음 매체를 통해 타인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데서?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감수성과 어떤 두려움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과 공간에 안전하게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반대편에서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치장해 수화와 같은 비언어적 매개를 활용하거나 외국어를 전면에 끌어들이는 시도 역시 대부분 피상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끈기 있게 대상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출품작의 편수가 줄어든 것 또한 우려할 만한 지점이라고 느낍니다. 타자의 삶을 관찰하고, 카메라와 피사체가 접촉하는 관계를 성찰하는 취재와 기다림의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그 대신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역사적 사료들을 특유의 지성적인 몽타주를 통해?재구성하는 이른바 에세이적이라고 부를 만한 시도들이 확연히 늘었습니다. 저희는 이런 작품들이 선보이는 자유로운 사유 체계와 탄력적인 형식에 매혹되면서, 이러한 흐름이 ‘나'의 직관과 관심사를 빠르게 단편영화라는 작품의 단위로 옮겨야 하는 창작자들의 강박과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완성과 미완성의 관계입니다. 이제 단편영화에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고 전문적인 기술 스태프와 유명 배우가 참여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단편영화의 시청각적 요소가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술적 완성도의 균일화가 단순히 영화 내적인 변화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단편영화는 영화 학교와 제작지원 제도, 영화제 상영과 수상 결과, 심사위원의 리뷰와 관객들의 즉각적인 평가라는 회로에 갇혀 있고, 이 회로는 모든 작업물이 그 자체로 완결된 결과물이 되기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제도권 영화감독이 되는 경로가 준수한 단편영화로 ‘업계'의 눈도장을 찍는 것 외에는 희박해진 환경도 이 회로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모두 평가가 완료된 작업물을 내놓고 완성된 감독이 되려고 하는 동안 어쩌면 한국 단편영화는 미완성과 과정에 속할 수 있는 수행적 가능성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단편영화는 해결되지 않는 내러티브, 어설픈 촬영과 조명, 무뚝뚝한 연기와 움직임, 조악한 촬영 환경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만의 방법론과 규칙을 제시할 수 있는 실천의 현장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창조적인 문법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기술적 완성도로 눈가림하는 결과물 대신 어색하고 단조로운 완성도일지라도 창의적인 가능성에 영화를 내거는 모험적 시도에 이끌렸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한국 단편영화'에 드리운 이와 같은 두려움과 강박을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하는 작업에 주목했습니다. 여러 명의 심사위원이 협력하는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쳐 일방적인 목록을 작성할 순 없었습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견해를 내세우는 것만큼 반(反)영화적인 절차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번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선정된 30편의 영화는 카메라를 든 주체와 세계 사이에서, 완성과 미완성 사이에서 협상하고 타협하고 토론하며 두 가지 방향성을 나란히 포착하고자 한 결과물입니다. 소중한 영화를 출품하고 그 영화에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와 존중의 말씀을 전합니다.
- 한국단편경쟁 예심 심사위원
김병규, 강유가람, 김보년, 문혜인, 정지혜, 최창환,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