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나라에서>는 한국에 들어온 네팔 이주 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가 각별히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2020)라는 시집에 시를 수록한 노동자들이다. 이 책에 실린 69편의 시를 쓴 35명의 네팔 이주 노동자 중에서 영화는 한국에 거주 중인 세 명(딜립 반떠와, 수닐 딜떠 라이, 지번 커뜨리)의 삶을 밀착해 쫓아 다닌다. 또 네팔로 돌아간 러메스 사연, 어이쏘르여 쉬레스터 같은 이들을 네팔 현지에서 인터뷰한다.
이 정도 소개만 듣고나면 누군가는 이 다큐멘터리가 뻔하다고 지레짐작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딜립과 수닐, 지번이 네팔에서 각각 교사, 금융회사 직원, 방송사 기자처럼 나름 엘리트 구성원으로 일했던 탓에 한국에 온 뒤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다거나 그들과 동료들이 미시적 차원에서부터 거시적 수준까지 각종 차별을 받아왔다는 이야기는 그리 새롭지 않다. 이주 노동자들이 자던 중 심장마비로, 사고사로, 자살로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큰 충격을 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동안 이와 유사한 뉴스를 거듭 들으며 우리 양심도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도록 ‘단련'된 탓인지도 모른다.
만약 <기계의 나라에서>가 평서체로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말했다면 눈길을 끌 수 없었을 것이다. 40년 이상 다큐멘터리 작가 생활을 했고, 10년 넘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김옥영 감독의 연출 데뷔작답게 이 영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대상에 접근한다. 그것은 시어(詩語)를 통해 네팔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다는 방법론이다. 영화는 이야기 맥락에 따라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저자들이 자신의 시구를 읽는 영상을 집어넣는데, 이는 놀랍게도 신선한 감흥을 선사한다. 시의 언어로 해석되고 치환된 현실은 일반 다큐멘터리 문법의 결과물과 확연하게 다르다.
이를테면, “로봇을 만드는 나라에서 로봇이 되어/ 자신의 성실한 노동의 시간을 보낼 때/ 가끔은 휴대폰의 사진첩을 본다/ 그 사진첩 맨 아래 가려져 있는/ 대학교 졸업식 가운을 입고 찍은/ 나의 졸업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딜립 반떠와, '나' 중에서)라거나 “하루는 삶에 너무도 지쳐서/ 내가 말했어요/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해결해주셨어요/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이제는 나를 죽게 해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알았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 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 죽으렴!”(러메스 사연, ‘고용' 중에서) 같은 구절은 보는 이를 자연스레 지은이의 심상으로 데려가며 동시에 공감의 문을 열게 한다.
<기계의 나라에서>는 시어에서 나오는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다채로운 인서트 컷을 삽입하고 인물들의 진술을 서두름 없이 편집해 전반적인 정서를 환기한다. 영화 중간중간 지번 커뜨리가 ‘어제 어디에서 일하는 네팔 어느 곳 출신 누가 사망했다'는 건조한 팩트로만 뉴스를 나열하는 것처럼, 영화는 네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과 한국인들의 악행과 무관심에 관해서도 그리 흥분하지 않은 채 전한다. 대신, 부글부글 끓는 이주 노동자의 심경을 담은 시들을 누적시키면서 자연스레 대한민국이라는 ‘지옥도'를 완성한다. 타자를 배제하고 짓눌러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진실은 네팔 이주 노동자의 절절한 돌직구 같은 시어에 의해 폭로된다.
결국, “친구야,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여기는 사람이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고/ 기계가 사람을 작동시킨다/(중략) 이 기계의 도시에서/ 기계와 같이 놀다가/ 어느 사이/ 나도 기계가 되어버렸구나”(서로즈 서르버라하, '기계' 중에서) 같은 시구를 읽다 울컥해지는 것은 단지 이주 노동자의 감정에 동화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주 노동자의 삶이 거울이 돼 프랑켄슈타인처럼 기괴한 모양으로 덩치 커진 진짜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주 인권운동가 우춘희 씨가 한국 농촌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 노동자들과 1500일을 함께한 뒤 낸 책 『깻잎 투쟁기』(2022) 서문에 적힌 다음 구절은 이 자리에 잘 어울릴 듯하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이주 노동자는 단순히 ‘인력'이 되어 우리 사회의 노동력 빈칸을 메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 보따리 안에는 삶도 있고, 꿈도 있고,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다. 특히 이주 노동자의 인권이 있다." (문석)